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clearfix]
1. 개요
구 유고시절과 크로아티아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구단이다. 항구도시인 스플리트를 연고로 삼았으며 디나모 자그레브와는 철천지 원수라서 이들의 더비는 이터널 더비라 불린다. 다만 현재는 디나모 자그레브에 밀려 2인자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2. 상세
관중 동원을 포함한 인기로는 크로아티아 최고에 가깝다.[2] 특히 달마티아 일대에 경쟁할 만한 클럽이 전무하다 보니[3] 사실상 달마티아 전체를 팬베이스로 삼고 있다. 심지어 명색이 주도인 두브로브니크의 경기장[4] 벽면에조차 토르치다의 벽화가 그려질 정도이다. 문제는 이들이 과격화되다 보니 일년에 몇번씩 무관중 징계를 얻어맞는 것.
3. 역사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는 1911년에 프라하의 가장 오래된 선술집에서 스플리트 출신의 학생들 4명에 의해 창단되었다. 그들은 AC 스파르타 프라하와 SK 슬라비아 프라하의 경기를 보고 감명을 받아 그들의 고향을 연고로 팀을 만들기로 결심하였고 팀명을 하이두크로 정하였다. 하이두크라는 이름은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발칸반도의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을때 활동했던 의적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이두크가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 클럽 중에서 독특한 점은 2차대전 기간중 추축국과 괴뢰국 크로아티아 독립국에 맞서 스스로 활동을 중지하고 반 나치 민병대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클럽이 거의 모두 해체된 데 비해 1944년에 재결성되어 현재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심지어 재결성을 후원한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클럽을 베오그라드로 모셔서 파르티잔의 대표 클럽을 만들 생각까지 했으나 이들은 스플리트에 남았고, 대신 창설된 것이 FK 파르티잔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하이두크는 점차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유고슬라비아에서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FK 파르티잔에 필적하는 구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하이두크는 유럽대항전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 8강 진출만 3회를 성공하였는데 이는 유고슬라비아내에서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파르티잔을 제외하면 가장 좋은 성적이다. 하이두크의 라이벌 디나모 자그레브는 16강조차 가본적이 없는걸 생각하면 대단한 기록임은 틀림없다.
4. 현재
구 유고 연방이 분리된후 생성된 크로아티아 리그에선 영 힘을 못쓰고 있다. 일단 유고 연방 해체라는 직격타를 맞은것 부터 시작해서 점점 몸집을 불려나가며 힘을 키우던[5] 자그레브가 아예 리그를 씹어먹으며 하이두크는 2인자로 전락하고 만다. 디나모 자그레브가 리그 11연패를 달성하는 동안 하이두크는 준우승만 5번 하게 된다. 옛날만해도 하이두크가 우세했지만 지금은 완벽히 처지가 달라지고 말았다.
심지어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새로이 부상한 HNK 리예카에 밀려 3~4위에 머무르고 있다.
19-20시즌 18승 6무 12패 승점 60점으로 디나모 자그레브, 로코모티바 자그레브, HNK 리예카, NK 오시예크의 뒤를 이은 5위로 리그를 마무리했다
5. 이야깃거리
- 하이두크 스플리트는 유럽에서 최초로 서포터 조직 토르치다(Torcida)가 생긴 팀이다. 스플리트의 서포터 조직은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유고슬라비아를 꺾었던 브라질의 열정적인 축구 팬들에 감화되어 서포터 이름을 토르치다로 지었다 한다. 토르치다란 포르투갈어로 torcer라는 ‘전진’의 의미를 가진 응원구호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외에도 츠베르나 즈베즈다와의 경기에서 횃불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는 방식의 응원방식을 처음 축구장에 등장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덕분에 크로아티아 밖에서도 하이두크는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크로아티아계 이민자들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이두크가 외국에서 경기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토르치다의 상징성과 영향력으로 인해 거대한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K-리그 경기장에서도 일부 구단의 서포터들은 'Torcida'라는 문구를 걸개로 만들어 경기장에 내걸기도 한다.
- 동유럽 최초의 트레블을 막은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1990-91시즌에 FK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리그는 물론이고 유럽도 정복하는등 최전성기를 과시하였지만 컵대회 결승에서 하이두크가 즈베즈다를 상대로 1-0으로 이기면서 그들의 행보를 더블로 그치게 만들었다.
- 마르첼로 브로조비치와 이반 페리시치가 국가대표팀에선 같이 잘 안 다니는 이유로 브로조비치는 디나모 자그레브 출신, 페리시치는 하이두크 스플리트 출신인 것 때문이라 팬들은 추측한다. 또 자그레브 출신의 소꿉친구들이 많은데 팀에서도 맨날 보는 페리시치랑 어울릴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고.
6. 주요선수
[1] 하이두크 스플리트 공식 서포터즈를 위해 12번을 영구결번[2] 2010년도 선호 클럽 설문조사에서는 디나모(36%)에 이은 2위(23%). 하지만 달마티아 지역을 독식한다.[3] 스플리트의 더비 상대격인 RNK 스플리트는 3부로 전락해 있으며, 겨우 NK 자다르가 2-3부를 오가고 있는 수준이다. NK 자다르 팬 정도나 토르치다에 대항해 보는 정도이다.[4] 3부 남부 소속 NK GOŠK의 홈구장.[5] 독립 크로아티아의 초대 대통령인 프라뇨 투지만 정권이 민족주의의 상징으로서 지원을 했다.[6] 수원 입단 전에 뛴 소속팀.[7] 유소년 팀 출신이다. 그리고 이 팀이 있는 스플리트 출신이기도 한 로컬 보이[8] 크로아티아를 월드컵 결승으로 이끈 그 감독이다.